빅토리아에 살다 보면 “섬”이라는 말을 자주 잊습니다. 다운타운에서 장을 보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주말에 이너하버를 걷다 보면 이곳이 남한 면적의 약 3분의 1에 이르는 큰 섬의 남쪽 끝이라는 사실이 잘 실감 나지 않지요. 그런데 차를 몰고 말라핫(Malahat)을 넘어 북쪽으로 한 시간만 달려도 풍경이 바뀝니다. 숲은 깊어지고, 마을은 작아지고, 바다는 더 거칠어집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빅토리아 가족들이 한 번쯤 꼭 가 봤으면 하는 세 곳, 서쪽 끝 토피노, 북부 아일랜드, 그리고 페리로 35분 거리의 솔트스프링 아일랜드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 토피노: 태평양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곳
빅토리아에서 토피노까지는 차로 대략 4시간 반에서 5시간이 걸립니다. 멀다고 느낄 수 있지만, 가는 길 자체가 여행입니다. 나나이모를 지나 4번 도로로 접어들면 지붕 위에서 염소가 풀을 뜯는 쿰스(Coombs) 마켓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수백 년 된 더글러스 퍼가 하늘을 가리는 캐시드럴 그로브(MacMillan Provincial Park)가 나옵니다. 아이들이 나무 둘레를 손잡고 재 보는 곳이지요. 포트 앨버니를 지나 산길을 넘으면 드디어 서해안입니다.
토피노와 바로 아래 유클루릿(Ucluelet) 사이에는 퍼시픽 림 국립공원의 롱비치가 길게 펼쳐집니다. 여름에는 서핑 강습을 받는 아이들로 북적이지만, 제가 더 권하고 싶은 계절은 오히려 지금부터입니다. 11월부터 3월 초까지는 스톰 와칭(storm watching) 시즌입니다. 태평양에서 몰려온 폭풍이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장면을, 따뜻한 숙소 창가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바라보는 것이 이 지역 겨울 여행의 정석입니다.
- 추천 전망 포인트: 국립공원 안 크위시티스 방문자센터(Kwisitis Visitor Centre) 전망 데크, 플로렌시아 베이 전망대, 유클루릿의 와일드 퍼시픽 트레일(Wild Pacific Trail)
- 안전이 먼저: 겨울 바다는 예측이 어렵습니다. 방문 전 물때(tide)를 확인하고, 바위 위로 올라가거나 물가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마세요. 해변 안쪽까지 올라온 통나무는 파도가 거기까지 온다는 표시입니다.
- 국립공원 입장: 롱비치 구역은 국립공원이라 입장권(Parks Canada 패스)이 필요합니다.
2. 북부 아일랜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
캠벨리버(Campbell River)를 넘어서면 섬의 북쪽은 사람보다 숲과 바다가 주인입니다. 연어의 도시로 불리는 캠벨리버는 낚시와 바다 생물 관찰의 거점이고, 서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BC주에서 가장 오래된 주립공원인 스트래스코나 주립공원이 있습니다. 엘크 폴스(Elk Falls)의 현수교는 가족 나들이로 부담 없는 코스입니다.
더 북쪽의 텔레그래프 코브(Telegraph Cove)는 바다 위 나무 데크로 이어진 작은 마을입니다. 여름부터 가을 초입까지는 범고래와 혹등고래 관찰의 명소로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섬 북쪽 끝의 포트 하디(Port Hardy)는 인사이드 패시지 페리와 케이프 스콧 트레일의 출발점입니다. 북부는 거리가 먼 만큼 1박 2일보다는 2박 3일 이상, 그리고 날씨가 안정적인 늦봄부터 초가을 사이를 권합니다. 겨울에는 숙소와 식당이 문을 닫는 곳이 많으니 꼭 미리 확인하세요.
3. 솔트스프링 아일랜드: 가장 가까운 ‘다른 섬’
멀리 가기 어렵다면 답은 솔트스프링입니다. 스와츠베이(Swartz Bay)에서 풀포드 하버(Fulford Harbour)까지 BC페리로 약 35분. 아침 배를 타면 점심은 섬에서, 저녁은 다시 빅토리아에서 먹을 수 있습니다.
섬의 중심 마을 갠지스(Ganges)에서는 4월부터 10월까지 토요일마다 솔트스프링 토요 마켓이 열립니다. 직접 만든 도자기, 목공품, 빵과 치즈, 제철 과일이 모이는,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농부·공예 시장입니다. 시즌이 10월까지라 올해는 지금이 막바지입니다. 염소 치즈로 유명한 솔트스프링 아일랜드 치즈 농장, 1872년 개척 농가가 지금도 남아 있는 러클 주립공원의 해안 산책길도 함께 묶기 좋습니다.
- 페리 팁: 주말과 마켓 날에는 차량 대기가 길어집니다. 여유 있게 도착하거나, 걸어서 배를 타고 섬에서 버스·택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 다른 경로: 나나이모 쪽에서 출발한다면 크로프턴(Crofton)에서 베수비어스(Vesuvius)로 가는 짧은 노선도 있습니다.
섬을 알아 가는 일
유학이나 이주로 빅토리아에 온 가족들에게 이 섬은 처음엔 “새로운 생활의 무대”일 뿐입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토피노의 겨울 파도와 솔트스프링의 토요일 아침을 경험하고 나면, 아이들에게 이곳은 “고향 같은 곳”이 됩니다. 이번 가을과 겨울, 지도를 펴고 섬의 서쪽과 북쪽으로 한 번 길을 나서 보세요. 빅토리아가 조금 더 넓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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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자료
- Parks Canada – Pacific Rim National Park Reserve
- Tourism Tofino
- Salt Spring Saturday Market
- BC Ferries
2026년 10월 5일 확인. 일정·요금은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에 공식 페이지를 다시 확인하세요. 금액은 따로 표시가 없으면 캐나다달러(CAD)입니다.
